🔖 자부심과 수치심은 언제나 개인적인 감정처럼 느껴지지만 그 뿌리는 더 넓은 사회적 환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양한 자부심의 기반을 발견했다. 지역적 자부심, 직업윤리에 대한 자부심, 아웃사이더로서의 자부심, 회복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주요한 자부심의 원천인 고임금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오래된 기술이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쓸모없어지고 가치가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상실감과 수치심이 정치인들이 캐내려는 ‘광석’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이렇게 해서 미국 전역에서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슴 아픈 자부심의 역설이 탄생했다.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두 개의 경제권, 두 개의 문화로 갈라졌다. 하나는 붉은 주, 또 하나는 파란 주다. 붉은 주들은 더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정부 지원도, 계층적 특혜도, 인종적 이점도 없이 오직 개인의 노력만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더욱 엄격한 전통적 개인주의에 직면했다. 반면 파란 주의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더 나은 경제 환경과 개인의 실패를 덜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흥미롭게도 공화당 지지자는 정부의 지원이나 규제를 배제한 자본주의, 즉 원시 자본주의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보다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장악한 주에서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가 더 험난한 시련을 초래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유시장은 인위적 통제 없이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을 때 다소 부침은 있겠지만 가장 잘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은 정작 그 손을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작동한 반면, 적극적인 복지 정책을 포함하는 경제 시스템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게 작동했다. 그래서 양질의 석탄이 고갈되거나 천연가스가 석탄보다 저렴해지면 많은 공화당 지지자가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결과라고 믿고는 개인은 그저 열심히 일하며 변화에 적응하면 된다고 여긴다.

🔖 데이비드는 좌파와 우파 정치인 모두에게 자신은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느꼈다. “민주당원이 신경 쓰는 건 인종 정체성, 성별, 그리고 성적 정체성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아요. 공화당원이 신경 쓰는 건 애국심과 세금뿐이에요. 그중 상당수가 인종주의자이거나 부자이고 사회계층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혼자 힘으로 일어서라는 말만 하죠. 그러니 저는 거기에도 맞지 않아요.”

🔖 미국은 오랫동안 국민의 수명을 연장하는 일에 앞장서왔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백인이 인생의 절정기인 45~54세에 조기 사망하는 비율이 예기치 않게 증가하고 있다. 주요 원인은 약물 과다복용, 자살, 알코올성 간 질환으로, 1999년 부터 2017년까지 6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집단은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블루칼라 백인 남성이었다. 그들은 영웅적인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것도, 바다에서 거친 폭풍우와 싸우다가 스러진 것도, 탄광에서 고된 노동을 하다가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둘씩 홀로 수치심 속에서 죽어갔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 “만약 제가 열네 살 때 뒷골목에서 대마초를 피우고 있는데 한 남자가 제게 관심을 보였다면 어땠을까요?” 토미가 자문하듯 말했다. “그 사람이 위장복 차림에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쓰고 저를 데려갔다면? 제가 부모님 집에서 나오기 위해 그 사람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면? 그리고 그때 아버지가 저를 심하게 때리고, 부모님 두 분이 술을 마시고, 그분들이 나를 제대로 알아봐주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고 느꼈다면?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자문해봤어요. 머슬카를 탄 그 남자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준다고 느낄 수 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남자가 ‘너희 아버지가 제재소에서 일자리를 잃은 건 이민자들 때문이야. 아니면 유대인이 제재소 문을 닫았기 때문이지’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저는 ‘아, 그렇군요…’ 라고 대답했을지도 몰라요.”
(…)
토미는 극단주의자가 신규 회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식으로 온갖 상상의 적들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치심을 덜기 위해 비난을 투사할 대상 말이다. 데이비드 메이너드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 못한 가난한 백인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보호해줄 국가적 서사가 없다는 사실 에 주목했지만 토미는 또 다른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수치심에 빠진 사람이 ‘외부’의 적을 비난하라고 부추기는 사람에게 얼마나 쉽게 휘둘리는가 하는 문제였다.

🔖 이 도시들이 시골 사람들을 끌어모으면서 고향에 남은 사람들은 점점 더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는 듯했다. 이 모든 상실에 근거 없는 굴욕감이 더해졌다. 로저가 보기에는 도시적이고 자유주의적이고 부유한 어딘가에서 날아든 굴욕감 같았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자부심 상실로 이어졌고, 이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통과하면서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됐다. 즉 이 지역 사람들은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했지만 사실 그들이 사는 주에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경제적 기회가 훨씬 더 적었다. 이것이 바로 자부심의 역설이었다.

🔖 트럼프는 이 네 단계의 의례를 집요하게 활용해 왔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이 의례는 우파 성향의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수단이 됐다. 수치심을 안기는 것, 수치를 당하는 것, 피해자가 되는 것, 그리고 반격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이 의례는 단순히 트럼프 지지자들이 지켜보는 쇼가 아니었다. 트럼프는 끊임없이 그 의례에 지지자들을 끌어들 였다.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건에서 트럼프는 이 4단계 의례를 더욱 거대한 무대에서 연출했다. 1단계는 의사당 난입이었다. 2단계는 대중의 충격과 기소였다. 3단계는 수치심을 안겨준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4단계는 의사당에 난입한 사람들에 대한 옹호였다. 여기에 ‘그들이 나에게 수치심을 안기면 당신들도 수치를 당하는 것’이 라는 결속의 메시지가 더해졌다. 여기에는 ‘그러니 우리 함께 복수하자’라는 암묵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 이 서사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책임 있는 주체’ 개념을 희석시키고, 초점을 피해자 의식·수치·비난·복수로 옮겼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왜 그것이 사라졌을까? 내가 (혹은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도둑맞은 것인가?
(…)
그런 지원과 공간이 부재한 자리에 도널드 트럼프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온 감정적 공허가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이 양대 정당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자신들의 존엄성과 존재감 상실을 대변해줄 더 큰 서사도 없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도둑 맞았다’는 이야기가 부각되었다. 대다수 미국인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반대 증거들이 산처럼 쌓여가는 상황에서도 ‘도둑 맞았다’는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굳어졌다. 그리고 다른 상실감과 부당한 수치심의 근원들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이 됐다. 이는 자부심의 역설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었다.
(…)
겉보기에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자부심을 되찾아주고 있었다. 그는 대다수 미국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들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그 거짓을 한 가지 진실과 결합했다. 잃어버린 자부심이라는 진실이었다. 그는 지지자들과 강하게 결속했고 심지어 하나가 됐다. 그가 지지자들에 게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은 곧 당신을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이다. 끊임없는 반복이라는 트럼프 특유의 연금술을 통해 ‘도둑맞은’ 대상은 점점 더 늘어났다. ‘잃어버린 것’이 ‘도둑맞은 것’으로 바뀌면서 수치심도 차츰 비난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수치심이 비난으로 바뀔 때마다 슬픔은 분노로, 우울감은 격분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전류가 흐르듯 강렬하게 퍼져나갔다.

🔖 아메리칸드림을 새롭게 정의하고 모두가 그 꿈에 다가갈 수 있게 해야 우리는 이 두 가지 숙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아메리칸드림에서는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일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면 ‘더 많이’가 꼭 더 좋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대신 우리가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안정적 생활 여건, 튼튼한 공동체, 그리고 연약한 지구를 보살피는 노력이다. 우리는 부의 극단적 격차를 줄이고, 중산층을 재건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안전장치들을 더 단단히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목표에 모두 평등하게 접근하게 함으로써 수치심이 가장 깊게 파고드는 취약 지점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