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이 변화의 원동력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면 기술에는 가치관과 정치가 녹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기술과 가치관·정치의 관계는 쌍방적이다. 정치가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도 우리가 놓인 정치적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재생 에너지가 값싸고 풍부한 세상의 정치는 재생 에너지가 비싸고 귀한 세상의 정치와 다르다. 모듈 건축으로 건축 비용이 하락한 세상에서는 주 정부와 지역 정부 예산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 “이미 집을 소유한 이들에게는 집의 가치가 절상하는 동시에 아직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집을 장만할 수 있을 정도로 집이 저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논리는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가 어떤 정치적 환경을 조성할지는 뻔하다. “주거 시설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시설의 희소성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체제는 그 성격상 집을 소유한 사람들과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들이 맞서 싸우게 만든다”라고 뎀사스는 말한다.

🔖 조직화한 집단이 많을수록 분배를 두고 더 많이 다투게 되고, 로비 활동도 더 활발해지고, 복잡한 규제가 더 많이 생기고, 집단들 간의 협상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복잡한 프로젝트를 완성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올슨은 말한다. 풍요롭고 안정적인 사회에서는 훨씬 많은 협상이 이뤄진다. 따라서 더 많은 협상가가 필요하다. 이는 바람직하다.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가 전달되고, 요구 사항이 충족되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들이 통합되고, 생각이 공유된다. 그러나 동시에 무슨 일이든 마무리하기 어려워진다. 캘리포니아주는 고속철도 수백 마일도 건설하지 못하는데 중국은 고속철도를 수만 마일 건설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은 화물 보관 시설을 옮길지를 두고 여러 판사와 논쟁하느라 몇 년을 허비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의 막강한 힘은 남용과 독단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고속철도의 신속한 건설로 이어지기도 한다.

🔖 법률 훈련을 정치 경력을 쌓는 데 필요한 기본 요건으로 만들면 법률적 사고가 정치의 기본적인 사고가 된다. 그리고 법률적 사고는 결과보다는 법적인 용어와 절차 준수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올슨은 번영하는 성공적인 사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복잡해져서 헤쳐나가기 어려워진다고 예측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집단들이 늘어나고 법과 절차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그런 복잡다단한 환경을 잘 헤쳐나가는 데 최적화한 사람들이 성공한다. 경제 부문에서 그런 사람들은 아마 경영 컨설턴트와 금융인들일지 모른다. 정치에서는 단연 변호사다. 변호사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변호사가 필요하고 나라나 정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변호사가 그처럼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나라나 정치 체제라면 뭔가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집단의 이해관계를 균형 맞추는 데 골몰해 공익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체제가 되기 때문이다.

🔖 미국 국민이라면 미국 정치 노선은 강하고 적극적인 정부를 믿는 리버럴 진영과 정부를 불신하는 보수 진영으로 나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리버럴 진영은 정부를 믿는다면서 정부가 실제로 일을 하기 어렵게 손발을 묶는 정책을 끊임없이 통과시킨다. 보수 진영은 작은 정부를 원한다고 말은 하면서 정부가 막강한 권한과 힘을 행사하는 국가 안보와 감시 체제를 지지한다. 양 진영 모두 자기들이 원하는 정부와 그 정부가 했으면 하는 역할이 모순된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 구분은 보통 정부의 본질적 차이라기보다 정서적 차이다.

🔖 지역 사회의 반대를 극복하려면 각종 요구에 합의해야 하고, 그러면서 건설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역 사회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개발업자들은 몸값 비싼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끊임없이 계획을 수정하고, 심미적인 면에서 그리고 건축 설계 면에서 온갖 양보와 추가를 하고, 변호사와 회계 감사관을 추가로 고용하는 등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끝도 한도 없었다. 개발 프로젝트가 이 모든 장애물을 다 극복한다고 해도 한 가구당 건설 비용은 훨씬 커지고, 그러면 당연히 이 프로젝트는 해당 지역 사회가 다음 프로젝트를 반대하기 위해 무기로 휘두를 자료 역할을 한다.
어쩌면 커트너가 주장하듯이, 문제는 단순히 공공 주택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싱가포르에서는 인구의 거의 80퍼센트가 공공 주거 시설에 거주한다. 공공 주택은 미국에서 평판이 나쁘지만, 메릴랜드주의 몽고메리 카운티 같은 지역에는 외관이 수려한 주거 시설이 들어섰고, 조지아주 애틀랜타 같은 대도시들은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해 공공 프로젝트로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건설 프로젝트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마찬가지로 똑같이 사회적 주거 시설의 성패도 결정한다. 망치로 못을 박는 노동자가 공무원이든 민간 도급업자이든 상관없이 정부는 주거 시설을 적정 가격에 빨리 지어야 한다. 그럼에도 리버럴이 장악한 정부 내에서 리버럴이 설계한 규정과 제약으로는 적정 가격에 빨리 주거 시설을 짓기가 불가능하다.

🔖 리버럴 진영은 정부가 맡은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는 방법으로써 선출된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을 신뢰하기보다 규제와 법적 절차를 신뢰하는 쪽을 선택했다. 과거에는 그런 방법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방법은 틀렸다. 정부가 크냐 작으냐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니다. 정부가 잘 작동하는지가 문제다. 정부는 정부가 따르는 규정이 아니라 정부가 하는 업무의 결과물을 통해 정부라는 존재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

🔖 기발한 아이디어가 탄생하거나 발명의 최초의 원형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그 아이디어나 발명이 세계를 바꿀 잠재력에 흥분한다. 그러나 진보가 일어나려면 발명이 아니라 실행이 더 중요하다. 존재하지 않던 아이디어가 존재하게 되면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나 개인, 기업 그리고 정부가 아이디어를 하나에서 10억 개로 만드는 방식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다.
게다가 진정으로 기발한 발명을 했다고 해도 그런 아이디어가 항상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1만 년 인류 문명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아무런 진보도 일어나지 않았다. 질병들은 완치되지 않고, 자유는 확대되지 않고, 진실은 전달되지 않고, 기술은 약속한 바를 지키지 못했다. 진보는 고통스러운 현재 상태에서의 탈출구이고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식이다. 인간의 발명과 제도들이 어떻게 질병, 빈곤, 고통, 폭력을 줄이는 한편 자유와 행복과 개인의 권한을 확장하는지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다. 미국에서 서서히 멈출 위기에 처해온 사연이다.

🔖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Joel Moky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요 발명은 대부분 초창기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엔지니어가 증기기관을 수정 보완했듯이 말이다. 발명은 기간 시설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핵분열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은 제대로 작동하는 원자로 속에 넣고서야 가능해졌듯이 말이다. 그리고 발명은 대량 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포드의 자동차 모델 T(Model T)가 대량 생산으로 가격이 하락하고서야 비로소 나라 전체에 큰 변화를 일으켰듯이 말이다.”
(…)
만지작거려 수정 보완하고, 구현하고, 대량 생산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모키어는 미세 발명(microinvention)이라고 일컫는다. 즉 새로운 아이디어를 중요한 상품으로 전환하려면 점진적으로 조금씩 개선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미세 발명은 최초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다.

🔖 제조 부문의 역사에는 라이트의 법칙(Wright’s Law)이라는 개념이 있다.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학습 효과로 인해 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 라이트의 법칙은 ‘뜻밖의 깨달음’이라는 낭설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라이트의 법칙에 따르면, 혁신은 두 단계로 이뤄진 절차가 아니다. 고독한 천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다음 아무 생각 없는 인간 무리가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뭔가를 생산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뜻이다. 혁신은 만드는 행위 안에 녹아 있다.

🔖 진보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지금도 여전히 발명과 실행이 병행되어야 일어난다. 아널드 벤처스 자선 기구(Arnold Ventures Philanthropy) 공동 의장 존 아널드(John Arnold)는 간결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은 발명하는 역량이 있고, 중국은 만드는 역량이 있다. 둘 다 하는 방법을 먼저 파악하는 나라가 앞으로 초강대국이 된다.”

🔖 기술적인 진보가 이뤄지기 위해서 어떤 한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는 자금이나 재원이 필요한데, 정부가 수수방관한다면, 진보는 둔화한다. 이게 바로 1980년대에 태양 에너지 산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민간 부문은 태양 에너지를 대량으로 생산할 재원이 없는데 정부는 지원을 삭감했고 태양 에너지 산업은 싸늘하게 식었다. 발명에 대해 친화적인 정부가 추진해야 할 최고의 목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페니실린 생산을 국가적 차원에서 총지휘할 수 있는 민간 기업은 없었고, 따라서 OSRD가 그 일을 했다. 1960년대에 인간을 달에 보낼 수 있는 민간 기업은 없었고, 따라서 NASA가 그 일을 했다.

🔖 이와 비교해볼 때 풍요는 좌익적 사고의 옛 전통으로의 회귀다. 《공산당 선언》에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상품을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데 있어서 자본주의가 봉건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시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희소성의 법칙이 지배한 100년 동안 유산 계급은 그 이전의 모든 세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대대적이고 거대한 생산력을 구축했다.”
두 사람은 이러한 생산에서의 혁명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혁명이 가속화하기를 바랐다.
오로지 자본주의만이 해방할 수 있는 생산력을 봉건주의가 봉쇄했듯이, 자본주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해방할지도 모르는 풍요를 제약했다. 이러한 경제적 분석의 핵심 개념은 “생산성 속박하기(fettering of production)“라고 일컫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대부분 기업이 수익에 집착하므로 현재의 수익률을 위협하거나 즉각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데 실패한 아이디어들을 경제 전체가 탐색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수많은 죄악 가운데는 애초부터 가장 놀랍고 쓸모있는 기술이 발명되고 적용되지 못하게 막는다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쓸데없는 속박으로 경제가 사달이 나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다수는 피해를 보고 부유한 소수만 이득을 본다.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목표는 생산 기계를 중단시키는 게 아니라 공동의 풍요라는 목적에 부합한 생산이었다. 생산력을 해방해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케 하자는 게 목표다. 마르크스가 저지른 오류도 많지만, 공산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그의 분석에서 지혜가 보이기는 하리라 믿는다.

🔖 풍요를 추구하려면 제도적인 일신이 필요하다. 가장 위험한 정치적 병리 현상은 적이 공격하는 대상은 무엇이든 무조건 방어하는 경향이다. 우익 진영이 수십 년 동안 정부를 공격하면서 리버럴 진영은 반사적으로 정부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부를 신뢰한다면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부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려면 정부가 어떨 때 실패하고 왜 실패하는지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 풍요에는 미국이라는 프로젝트에 꼭 들어맞는 거대함이 내재되어 있다. 단순히 무엇이든 더 많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게 더 많기를 바라는 풍요다. 풍요는 끊임없이 제도를 고쳐나가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이다. 기술은 늘 진보의 핵심이었고 지금도 진보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풍요다. 풍요는 미국의 집단적인 특질을 지구의 필요와 서로의 필요와 조화시키겠다는 결의다. 풍요는 리버럴리즘이 맞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풍요는 뭔가를 구축하는 리버럴리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