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은 읽히기보다는 숭배되는 책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는 종종 파편화된다.

🔖 거창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들은, 그런데, 생명력이 강하다. 끝까지 살아남는다. 어떤 예술가들은 그런 희망을 포착한다. 그들은 슬픔과 절망 사이에 빛나는 아주 작은 것들을 발견하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든다. 그것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작은 것들의 신》에는 섬세하게 묘사하고 또 묘사하는 감각적인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내용 파악이 더 어려운 면도 있다. 문장마다 깊게 웅덩이가 고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 문장에 집중하게 되는 면도 있어서, 《작은 것들의 신》을 다시 읽으면서는 다소 과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멈춰 서서 나뭇잎을 바라보고 그의 벗은 등을 만지듯이 응시하고 작은 물방울소리에 넋을 놓는다고? 그래서 소는 언제 키울 생각이야? 이런 생각.
하지만 긴 시간 이 책을 거듭해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작은 것들’이며, 이 순간들을 잘 붙잡는 방식이야말로 ‘작은 것들의 신’이 우리의 삶에 깃드는 방식임을. 카멜레온 한 마리가, 색이 아주 선명한 히비스커스 한 송이가, 바쁘게 움직여 몸을 숨기는 잿빛 정글 새가 삶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순간 등장하는 윤이 나는 대나무 경찰봉. (이 즈음에서 또한 말해야 할 것은 아룬다티 로이가 이 소설을 쓴 뒤로는 소설이 아닌 비소설 작업을 오래 했는데, 인도의 핵무기 개발, 대형 댐 건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소수자 탄압과 카스트 제도 등에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며 글쓰기로 정치적 투쟁을 활발히 했다는 사실이며, 그것은 ‘거대한 것들’을 직접 언급함으로써 ‘작은 것들’을 지키는 그의 고집스러운 방법론이라는 사실이다.)

🔖 초등학생 때 내가 용돈을 아껴 사모았던 색색의 지우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밤 끌어안고 잤던 인형들은 다 언제 내 방에서 사라진 걸까. 분리, 이별, 망각은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다. 그 시기에 내가 경험한, 내게는 고유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이었던 고통과 기쁨은 내가 가진 정신적 지형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못된 면, 웃긴 면, 사나운 면이 다 그렇게 모양새를 잡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때보다 더 내가 되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조금씩 변화를 겪는 중임을 안다. 《17세의 나레이션》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너는 네 자신이 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만 빼고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니… 아니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니…”
’세영아 알고 있니, 그 질문을 너는 앞으로도 한평생 반복하며 살게 될 거야. 그 순간 삶의 만족감이 어디서 비롯하는지에 따라서 답은 전자였다가 후자였다가 할 거야. 택일식 질문에 정답은 없다는 걸 너는 알게 되겠지만, 어떤 답을 고르는지, 어떤 태도로 답을 고르는지, 그 생각을 어떻게 삶에 반영하는지가 답보다도 중요하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줘. 네가 망설일 때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과 연인이 되고 친구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 모든 질문과 조언은, 네가 나이 들어가는 나날에도 중요해. 여름방학이 끝나도 빛나는 날들은 있어. 가장 어두운 날들에도 그 사실만은 꼭 붙들고 살아가.‘
세영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궁리했는데, 그 말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