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신화는 사랑과 만족감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규정된 단계를 따라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쉽게 가정한다. 파트너의 성적 사회적 욕구를 비롯한 모든 욕구가 ‘정상적’일 거라고, 즉 스스로의 것과 유사하거나 주류 각본에서 정상이라고 여기는 욕구와 비슷할 거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과 다를 때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성인기 내내 혼자 살고 싶어 하고 ‘원래 그래야 하는’ 것보다 섹스를 적게 하고 싶어 하고 결혼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로맨스 신화는 충분한 성찰 없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만든다. 가령 파트너의 일터와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친구와 공동체를 등지고 멀리 이사를 가기도 한다. 또 친구보다 연인을 중시하게 만들고, 친구나 다른 지지 집단에 들이는 노력을 줄여 종종 고립을 유발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일부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그 결과 우리는 낭만적 관계에서 겪는 일들을 포함해 삶의 여러 난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 혹은 충분히 도움받지 못한다. 또 로맨스 신화는 질투와 소유욕을 정당화하며, 나아가 갈등을 심화하고 학대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로맨스 신화의 영향 아래에서 원망이 쌓여 곪아가고 고착화된 비난의 역학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네가 진짜 나를 사랑했더라면… 내가 섹스하고 싶을 때 너도 원했겠지. / 나랑 결혼했겠지. / 같이 살았겠지. / 함께 아이를 가졌겠지. / 내 마음에 안 드는 활동은 그만뒀겠지. (…).
진실은 이렇다. 우리의 모든 정서적 필요를 충족해 줄, 단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한 연결을 맺을 때 더 안전하고 건강하며, 많은 사람과 신뢰와 연결을 키워갈 때 창의성과 끈기를 바탕으로 생존하고 저항할 수 있다. 존재하고 관계 맺는 방식에 ‘정상’이라는 건 없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대우받고 싶은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길 바란다면 그들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좋아” 또는 “싫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상대의 대답이 “싫어”라면 우리는 다른 데서 필요를 충족하거나, 스스로 채우거나, 충족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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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는 나란한 두 고독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 사람이 자기 자신을 버리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두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 각자를 버리면 발을 딛을 땅이 없어져 함께 있는 일은 끝없는 추락이 될 뿐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1904년 4월 29일 파울라 모더존-베커에게 보낸 편지
🔖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삶을 완전히 뒤바꾼다. 사랑은 엄청난 동기를 불어넣으며, 이는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친구들이 새로운 성적 낭만적 관계를 통해 창의성, 성적 표현, 정의를 향한 열정을 새로이 발견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러나 사랑은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자존감을 잃고, 고립되고, 다른 활동이나 관계를 위협이라고 느끼는 연인과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저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은 연인의 영향 아래에서 피어나고,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중요한 부분과 단절되기도 한다. 그러니 사랑이 우리를 깊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랑은 위험한 동시에 해방의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우리를 지금 상태로부터 흔들어 깨우고, 새로운 지평을 욕망하게 만들고, 이를 향해 움직이게 만드니까.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기를 바라는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으로부터, 사랑으로 인해 잃거나 변하지 않도록 지키고 싶은 것들은 무엇인가?
🔖 그 친구는 스스로를 등을 맞댄 두 개의 몸을 가진 사람으로 상상한다고 했다. 한쪽은 절박하게 집착하듯 연인을 향해 다가가려 하고, 다른 한쪽은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 이미지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힘든 순간에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간절한 욕구를 느끼는 동시에, 도저히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걸 견딜 수 없다고 느낀다. 나는 이런 상태에 빠질 때, 특히 내 안의 회피하는 부분이 올라오면 스스로 ‘친밀한 관계에 서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가 관계 속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친밀한 관계는 소속감, 연결감, 안전, 창조적 표현에 대한 근원적 욕망을 자극한다. 우리는 서로를 절실히 원하며 서로를 필요로 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서로를 강렬하게 흔든다. 최선의 경우, 관계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실험하고, 배움을 실천하며, 끊어내고 싶은 문화적 각본을 드러내는 실험실이 된다. 상호성, 돌봄, 공동체성, 너그러움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함께 살아남고 저항할 수 있도록, 우리는 감정적으로나 관계적으로 더 급진적으로 난잡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