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지대
그는 입 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말 때문에 어느 날 밤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말들이 자갈처럼 무거워져서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고 매일매일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고 했다 삼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가라앉고 있다고 이건 꿈이 분명하다고 그런데 이렇게 긴 꿈은 처음이라고 이 꿈에서 깨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겨우 말을 이었다 그는 입 속의 말들이 어떻게 돌멩이가 되는지 내 속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돌멩이들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고 모든 영화에는 엔딩이 있는데 어째서 이 꿈에는 출구가 없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얼마나 더 아래로 내려가야 바닥에 닿을 수 있는지 과연 바닥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내가 삼 년 만에 처음 본 사람인데 당신도 이 꿈의 마지막을 알 수 없겠지요, 라고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자갈이 목까지 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없이 더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 나의 나 된 것
매일 같은 시각에 노인은 개를 산책시켰다 아이들은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병아리를 파는 남자는 죽은 병아리들을 하수구에 빠뜨렸다 쑥을 뜯으러 갔던 여인들이 며칠째 돌아오지 않았고 주민들이 숲을 수색했다 불 꺼진 교회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받을 축복과 저주의 무게를 달아보았다 한밤중 눈은 계절과 무관하게 내렸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끌고 왔다 사람은 한 번만 죽는 게 아니라고 백 번도 넘게 죽을 수 있다고 너는 말했다 영원히 사는 사람들의 밤에 대해서도 고요히 쌓이는 눈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따금 나는 나의 눈을 찔렀다 모두가 나의 나 된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게 더 오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