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는 실망이 뒤따르지 않는 환상이다.

🔖 나는 루실이 이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모른 채로 지내는 것이 좋다. 개와 함께 사는 이런 미스터리가 좋다. 녀석과 내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순간,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을 넘어서 상대와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는 순간, 상대가 무얼 원하고 느끼는지 이해하는 그 순간은 우리 영혼을 밝히는 소중한 순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순간을 존중하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우리 영혼을 밝히는 것이 아닐까?

🔖 녀석은 내게 고독과 고립 의 차이를 깨우쳐주고 또 그 차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해준다. 루실과 함께 밖에 나가면 남들에게 향하는 길이 열린다. 녀석과 함께 집에 있으면 고통 없이 혼자 지내는 길이 다가온다. 개를 대체물로 보는 것은, 세상을 사는 방법이 사람과 함께 살거나 사람 없이 사는 두 가지뿐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때로 두 가지가 다 필요하고, 때로는 둘 사이의 안전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개는 안전 공간을 만들고 채워준다. 개가 그렇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