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떨어지면 무조건 깨지는 거라고 / 화분은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잘못 없이 넘어진 흙을 알고 있으니까 / 흙은 깨진 적 없지만 처음부터 터진 모양이었으니 소리 낸 적도 없을 것이지만 오래 갈리고 젖어 고와진 흙 진흙으로 검어진 발가락 아슬아슬하게 쫓아오는 나를 미워하면 목구멍까지 흙이 차오르게 돼 심장이 또 뿌리를 흔들어 입 밖으로, 무엇이 뱉어질 것 같은 // 식물이 나에게 있는 것이 버거웠고 / 나에게 없는 식물이 너무 버거워서 // 알지 못하겠어 이 비행기가 어디로 갈지 가지 않을지 알지 못하겠어 추락할지 도착하기는 하는지 잠을 자면 꿈이 계속되었어 잠 안의 꿈 꿈 안의 나 나는 계속해서 잠을 시도했어 그런 식으로 화분이 흙과 동일해 왔어 그러나 아무도 여기에서 까맣게 젖은 나의 일부에서 무엇이 시작되리라고 여기지 않아 아직도 이 진흙의 이름을 모르고 있어
🔖 고양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넌 날 몰라 네가 뭘 안다고 너는 아무것도 몰라 가끔 고양이는 두 발로 걸었고 세 발로도 걸었고 걷지 않고 움직이기도 했다 정말로 고양이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피투성이 이마로 눈을 뜨면 난 되뇌어야만 했네 고양이다 고양이야 내가 쫓아간 고양이 그러니까 어젯밤 그건 일종의 애정 표현······ 입맞춤······ 내가 모르는 세상에는 부리와 날개와 단지 독특한 사랑법을 가졌을 뿐인 고양이가 있는 것이다
침대 아래에는 모서리 많은 파편이 자갈처럼 깔려 있으며 / 고양이는 이것을 본인이라 말한다 자 걸어 봐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 걸어 봐 / 네가 선택한 아픔을 / 염치없이, 고양이에게 이해를 바랄 수 없는 아픔을 / 불안 굉음 적목 현상 의기소침 연민 안으면 흘러내리는 부드럽고 연약한 몸 그 안에 무수한 칼날 / 모두 고양이였다고 생각해? / 쏟아지는 옷 더미와 젖은 바닥과 사방에 널린 날카로운 조각 꿈의 조각 / 어지러이 // 나는 얼마간 분실되었다 /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 알 수 없는 동물이 되어
(…)
봄에 나는 우연한 계기로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강아지를 만나 게 되었다 안녕, 반가워요 그의 첫 마디를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 한 번에 반하는 것처럼 깨달았다 당신이다 당신이 고양이에게 말을 가르쳤다 조용한 당신 예의가 바르고 빈틈없는 당신 오늘 처음 만났지만 내가 열렬하게 좋아해 본 적 있는 당신 외에도 중요한 여러 당신을 도둑맞은 당신이다 나는 당신이 보여 주지 않은 빈틈을 본다 그 빈틈에 들어맞는 조각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서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안다 고양이는 사라졌고 당신은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나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당신을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