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넬은 가끔 숀에게 묻고 싶다. 우주비행사이면서 어떻게 신을, 그것도 천지를 창조한 신을 믿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알고 있다. 숀은 넬에게 우주비행사이면서 어떻게 신을 믿지 않을 수 있냐고 되물을 것이다. 결론은 나지 않는다. 넬은 끝없는 어둠이 맹렬하게 깔린 양쪽 창문을 가리킨다. 태양계들과 은하계들이 마구 흩어진 세계. 시공간의 왜곡이 거의 눈에 보일 정도로 시야가 깊고 다차원적인 세계. 이것 봐, 어떤 아름다운 힘이 아무런 의도 없이 내던져 놓은 게 아니면 이런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데?
숀도 끝없는 어둠이 맹렬하게 깔린 양쪽 창문을 가리킨다. 태양계들과 은하계들이 마구 흩어진 바로 그 세계, 시공간이 왜곡된 바로 그 깊고 다차원적인 시야를.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힘이 충만한 의도를 가지고 내던진 게 아니면 이런 게 만들어질까?
(…)
순간 숀은 생각한다. 진공 우주 속 깡통에서 나 지금 뭐하는 거지? 깡통에 든 깡통 인간. 4인치 두께의 티타늄 밖에 죽음이 있다. 그냥 죽음도 아니다. 존재의 말살이다.
왜 이러고 있지? 절대 번영할 수 없는 세상에서 바득 바득 살아 보려고 하는 이유는 대체? 완벽한 지구가 저기 있는데 굳이 우주가 원치 않는 곳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우주를 향한 인류의 갈망은 호기심일까 아니면 배은망덕함일까. 숀은 절대 알 길이 없다. 이 기묘하고 뜨거운 열망이 그를 영웅으로 만들까 아니면 바보로 만들까. 딱히 어느 쪽에도 못 미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 기운 차려, 아내는 이렇게 말했었다. 저 위에서 소멸하더라도 당신은 수백만 개 파편이 되어서 지구 궤도를 돌게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좋지 않아? 그리고 비밀을 모의하듯 웃는다. 습관처럼 그의 귓불을 어루만지며.  

🔖 떠나기 전 10대 딸이 이런 말을 했었다. 진보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럼, 아름답지, 그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정말 아름답고말고. 그러면 원자폭탄은요, 기업 로고 모양으로 빛나게 우주에 쏘아 올리겠다는 위성은요, 프린팅 기술로 달의 먼지 표면에 세우겠다는 건물은요? 꼭 달에 건물을 세워야 하는 거예요? 나는 그냥 지금 이대로의 달이 좋은데. 그래, 그래 그는 대답했다. 아빠도 그래, 하지만 그 모든 게 아름다워. 왜냐면 아름다움은 선함에서 오지 않거든. 너는 진보가 선하냐고 물은 게 아니였지. 인간도 선해서 아름다운 게 아니란다. 살아 있으니 아름다운 거야. 어린애처럼. 살아 숨 쉬며 세상을 궁금해하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선한지는 상관없어. 눈에 빛이 감돌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 가끔은 파괴적이고 상처를 입히고 또 가끔은 이기적이지만, 살아 있기에 아름다워. 살아 숨 쉰다는 점에서 진보도 그렇단다.

(…) 하지만 그가 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리고 돌아가게 되면 해 줄 말은 따로 있다. 진보는 어떠한 실체가 아니라 느낌이라는 것. 배에서 꿈틀대기 시작해 가슴으로 북받쳐 올라오는 모험과 팽창의 느낌. 피에트로는 이곳에서 크고 작은 순간마다 거의 끊임없이 그걸 느낀다. 세상의 심오한 아름다움을, 빽뺵한 별들이 무성한 이곳까지 그를 쏘아 올린 믿기 힘든 은총을, 그는 배와 가슴으로 느낀다. 제어 패널과 환기구를 청소할 떄, 따로 점심을 먹고 함께 모여 저녁을 먹을 때, 지구로 발사되어 대기권에서 연소되며 사라질 쓰레기를 화물 모듈에 적재할 때, 분광계가 지구를 측정할 떄, 낮이 밤이 되고 또 빠르게 낮이 될 떄, 별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질 때, 저 아래 총천연색 대륙이 지나갈 때,  공중에 떠다니는 치약 덩어리를 잡아 칫솔에 얹을 때, 머리를 빗고 일과를 다 마친 뒤 피곤한 몸을 끌고 끈이 풀린 침낭에 쏙 들어가, 이곳에서는 똑바른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떤 반발도 없이 머리가 받아들인 사실로 인해 똑바로도 거꾸로도 아닌 자세로 떠서, 밖에서 태양이 떠올랐다가 졌다가 하는 동안 인위적으로 정해진 밤에 지상 250마일 우주에서 잠을 청할 떄, 그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 윤이 나는 구슬 행성은 잠깐이지만 아주 달콤한 노래를 부른다. 지구의 빛이 합창한다. 그 빛은 1조 개 물체들의 앙상블이다. 짧은 순간에 모여 하나가 되고는, 거칠고 경쾌한 세상의 잡음 은하계 목관 악기 열대 우림 트랜스 음악으로 요란하게 뒤죽박죽 다시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