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소개를 하자 우에노 선생님이 “미나시타 씨, 시를 쓰신다면서요?”라고 물었다. 순간 움찔했다.
우에노 선생님이 시라고 하니까 죽음이 떠올랐다.
…
나는 일본이란 국가가 국민의 삶이 어떤지 그 내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희생만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이토록 살기 힘든 사회가 됐는데, 이토록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가 됐는데, 껍데기만 남은 가족 규범에 집착한다.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한다고 기치를 내걸었지만, 실상을 보면 극히 균질적인 생활만 허용한다. 그 뿌리에 있는 상상력의 빈곤이 두렵다.
이 나라는 사회가 변할 때 항상 여성의 힘을 이용해 왔다. 고도성장기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와 기업 전사가 된 남성들을 온 힘으로 지원해 줄 전업주부로 여성을 이용했다.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복지 재원이 부족해지자, ‘일본형 복지사회’랍시고 여성이 가족 내부에서 돌봄을 책임지라고 한다. 이제 생산이 가능한 인구가 감소하자,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동시에 저출산에 대응해야 하니 출산이나 육아도 해야 한다고 한다.
종전의 가족 규범을 따르지 않는 여성과 이런 여성의 아이들에게 국가는 아주 냉담하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지원이나 배려를 하지 않고, ‘죽음’으로 향하는 제도만 고집한다. 능력도 시간도 없는 내가 숨을 할딱거리고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근대 가족’이란 망령이 보인다. 미래 세대 아이들이 죽은 규범,아니 사라질 수밖에 없는 규범에 사로잡혀 있도록 둘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