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자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품이 팔리면서 공장 노동자가 자신이 만드는 사물로부터 소외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도 그것을 만들고 교환하는 사람에게서 소외된다. 사물은 홀로 존재하는 물건이 되어 이용되고 교환된다. 그 사물은 그것을 생산하고 배치한 사람들의 관계망과 어떤 관련도 맺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자본주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일상적인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쿨라를 공부하고 나면 이상하게 보이게 된다. 쿨라에서 사물과 사람은 함께 형성되는데, 선물을 통해 사물은 사람의 연장extension이 되고 사람은 사물의 연장이 되기 때문이다. 쿨라환의 귀중품들은 그것들이 형성하는 개인 간의 관계를 통해 알려진다. 유명인들 또한 자신들이 주고받은 쿨라 선물을 통해 알려진다. 그리하여 사물은 사용되거나 상품으로 교환될 때만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사물은 그것들이 일부를 담당하는 사회관계와 명성을 통해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 무엇이 교란인지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관점의 문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개미집을 무너뜨리는 교란은 인간의 도시를 날려버리는 교란과 크게 다르다. 개미의 입장에서는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관점은 생물종 다양하다. 로절린드 쇼는 어떻게 남성과 여성, 도시인과 시골 주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방글라데시의 홍수를 서로 다르게 개념화하는지 보여준다. 이는 그들이 수위 상승에서 받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위 상승이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홍수로 변하는 시점은 각 집단마다 다르다. 교란을 산정하는 단일 기준은 불가능하다. 교란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되는 문제다.
🔖 “기온이 낮아지면 모든 것들이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다시 따뜻해지면 고도가 높은 지역으로 올라갑니다. (…) 개체군들은 그 지방의 레지아에서 증가할 것이지만, 그것들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연어가 아닙니다. 어떤 방식으로도 갈 이유가 없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생태계입니다. 곰팡이가 이동하는것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것은 생태계다. 인간이 매우 많은 다른 생물종을 의도하지 않고 이동시킨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물을 바꾸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 문화인류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단위를 계속 사용하려면 그 연구 단위를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하는 틀로 다루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스즈키 박사는 생물종을 다루고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류들kinds은 지식만들기와 세계 사이의 끊어지기 쉬운 연결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종류들은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그것들을 연구하기 때문에 항상 과정 중에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것들이 덜 실재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 진보 이야기를 빼면 세상은 무서운 곳이 된다. 폐허는 버려졌다는 공포를 담아 우리를 노려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것은 더 어렵다. 다행히 여전히 인간과 비인간의 일행이 함께 있다. 파괴된 우리 풍경들의 제멋대로 자란 변두리를 자본주의적 규율, 확장성, 그리고 자원을 생산하는 방치된 플랜테이션 대농장의 가장자리를 여전히 탐험할 수 있다. 우리는 잠복해 있는 공유지의 냄새를 - 그리고 찾기 힘든 가을 향기를 여전히 붙잡을 수 있다.
🔖 어슐러 K. 르 귄은 「소설의 운반 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에서 독자들은 사냥과 살해에 관한 이야기 때문에 개인의 영웅적인 행위가 이야기의 요점이라고 상상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르 귄은 이러한 이야기 대신에 큰 사냥감을 죽이기 위해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다는 오히려 채집인이 하는 것처럼 다양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들을 포착해 함께 모으는 스토리텔링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종류의 스토리텔링에서는 이야기들이 결코 끝나지 않아야 하고 더 많은 이야기로 이끌어야 한다. 내가 용기를 북돋으려고 노력해온 지적인 숲에서 모험은 더 많은 모험으로 이끌고 보물은 더 많은 보물로 이끌었 다. 버섯을 채집할 때 하나의 버섯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첫번째 버섯을 찾으면 더 많은 버섯을 찾을 용기가 생긴다. 그렇지만 르 귄이 대단한 유머와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말했기에, 나는 마지막 말을 그에게 넘긴다.
나는 말하는데, 계속해서 야생 귀리를 찾아서 헤매세요, 슬링에는 우우를 싸서 매고 바구니에는 작은 움을 담아 들고 다니면서. (…) 만약 원하는 무언가를 담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라면, 그것이 유용해서, 먹을 수 있어서, 또는 아름다워서, 가방에, 또는 바구니에, 또는 나무껍질이나 나뭇잎으로 만든 두루마리 조각에, 당신의 머리카락으로 짠 그물망에, 또는 당신이 가진 어떤 것에든지 담는다면, 그리고 나서 집으로, 또 다른 더 큰 종류의 주머니나 가방, 사람을 담는 그릇인 집으로 가져간다면, 그리고 나서 나중에 그것을 꺼내서 먹거나, 함께 나누거나, 고체 용기에 담아 겨울을 대비해 저장하거나, 약재 꾸러미에 넣어 두거나, 사원이나 박물관, 신성한 장소, 성스러운 것이 살고 있는 지역에 놓아두거나, 그리고 나서 다음날 당신은 똑같은 일을 아마도 다시 할 것이고 - 만약 그것을 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것이 인간이라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결국 인간이다. 완전하게, 자유롭게, 기쁘게, 태어나서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