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발자취를 좇는다.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감정의 변화들을 주시한다. 내가 하는 이 일은 어쩌면 역사가의 작업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좇는 역사가다. 거대한 사건들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거대한 사건들은 역사 속으로 계속 전진해들어간다. 하지만 여기 이 작은 사건들, 그러나 작지만 작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이 사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오늘 한 소년(가냘프고 병약한 모습 때문에 병사처럼 보이지 않는다)이 동료들과 함께 적을 살해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흥분도 되더란다. 적을 향해 얼마나 무섭게 총을 쏘아댔는지 모른단다. 과연 이런 사건이 역사의 한자리를 차지 할 수 있을까? 내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일은 늘 그렇듯 딱 한 가지다. 나는 (책에서 책으로 넘어다니며) 필사적으로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린다. 역사를 사람의 크기로 작게 만드는 일. (…) 규모가 작은 전쟁을 책으로 써내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견지의 윤리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건 반드시 작고, 개인적인, 그리고 개별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건 바로 단 한 사람,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존재인 그 한 사람이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 중 어느 한 명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소중한 그 한 사람. 아이에게도. 어떻게 해야 우리는 정상적인 시각을 되찾을 수 있을까?
🔖 내가 공포를 느꼈다고 해서 부끄럽지는 않아요. 공포심이 용맹함보다 더 인간적이니까요.
🔖 아서 케스틀러가 했던 말, 기억들 하세요? “우리가 진실을 말할 때 그 진실은 왜 언제나 거짓처럼 들리는가? 새로운 삶을 천명하면서 우리는 왜 온 땅을 시신들로 뒤덮는가? 빛나는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왜 우리는 늘 협박을 일삼는가?”
🔖 재판은 이 대립에서 벗어나는 적법한 돌파구를 마련해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인간적인 돌파구여야 합니다. 어머니들은 언제나 아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옳고, 작가들은 진실을 말할 때 옳으며, 병사들은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보호할 때 옳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가치가 이곳 민사소송에서 충돌했습니다.
🔖 그렇다면 제가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제 눈에 비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볼 작가로서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제가 전쟁을 증오한다는 사실이고요. 또한 저는 진실과 유사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고, 예술에서의 기록문은 군정치위원회의 증명서도, 노면전차 승차권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제가 쓰는 책들은 기록문이면서 동시에 제가 시대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으로부터, 그리고 시대의 공기로부터, 공간으로부터, 목소리들로부터 하나하나 세세한 것들과 감정들을 수집합니다. 나는 이야기를 꾸며내지도 추측하지도 않습니다. 현실 자체로부터 책을 모으지요. 기록 문서, 그것은 사람들이 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며, 저는 이 기록문서의 일부입니다. 저 자신만의 세계관과 감각을 지닌 예술가로서 말이지요. 저는 이 시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쓰고 녹음합니다. 살아 있는 목소리들, 살아 있는 운명들을요. 역사가 되기 전의 목소리와 운명은 아직은 누군가의 고통이고, 누군가의 비명이고, 누군가의 희생이거나 범죄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그 기운이 우주에 미칠 정도로 악의 규모가 커져버린 이때, 세상에 악을 확장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악의 한가운데를 통과해 지나가지?’ 매번 새로운 책을 내기에 앞서 저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이는 저에게 큰 짐입니다. 그리고 저의 운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