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고 브루커 부부 같은 사람들은 역겨우니 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해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그들 같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그들 역시 근대 세계 특유의 부산물인 것이다. 그들을 만들어낸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 역시 산업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 가운데 일부이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하고, 최초의 증기 엔진이 돌아가고, 워털루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의 총포를 견뎌내고, 19세기의 애꾸눈 악당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제 호주머니를 채우는 것, 이 모든 일의 결과로 그런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 때문에 미로 같은 슬럼가가, 나이 들고 병든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빙글빙글 기어다니는 컴컴한 부엌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이따금 그런 곳들을 찾아가 냄새를 맡아볼(냄새를 맡는 게 특히 중요하다) 의무 같은 게 있다. 가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 게 낫겠지만 말이다.

🔖 나는 “우리가 느끼는 것하고 똑같이 그들이 느끼는 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리고 슬럼에서 자란 사람들은 슬럼밖에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의 오산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때 내가 그녀의 얼굴에서 본 것은, 까닭 모르고 당하는 어느 짐승의 무지한 수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모진 추위 속에, 슬럼가 뒤뜰의 미끌미끌한 돌바닥에 꿇어앉아 더러운 배수관을 꼬챙이로 찌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운명인지를, 내가 알듯 그녀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 25만 명의 광부가 실업을 당한다고 할 때, 뉴캐슬 뒷골목에 사는 광부 앨프 스미스라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일종의 순리라 볼 수 있다. 앨프 스미스는 단지 25만이란 숫자 가운데 하나, 말하자면 하나의 통계단위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하나의 통계단위로 보기는 쉽지 않다. 길 건너 사는 버트 존스가 아직 일을 하고 있는 한, 앨프 스미스는 스스로를 불명예스러운 실패자로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실업의 가장 큰 해악이랄 수 있는 무력감과 절망감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이다. 이 해악은 어떤 고생살이보다 훨씬 해롭고, 강요된 무위도식 탓에 기가 꺾이는 것보다도 해로우며, 앨프 스미스가 실업수당 생활을 하는 동안 태어난 아이들의 신체 발육이 떨어지는 것보다만 덜 해롭다.

🔖 그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자신이 사회주의에 대해 진정으로 호의적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작금의 상황이 과연 용인할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하며, 계급이라는 지독히도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 나는 5년 동안 압제의 일원으로 복무했고, 그만큼 양심의 가책이 컸다. 잊히지 않는 숱한 얼굴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법정에 선 피고들, 사형수 감방에서 최후를 기다리는 죄수들, 나에게 윽박질당하던 부하와 냉대당하던 늙은 농부들, 화가 난 나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은 하인과 쿨리들의 얼굴을 나는 지워버릴 수 없었다. 내가 느낀 죄책감은 너무 엄청나서 속죄를 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5년 동안이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잘못된 이론일지 모르나 압제자가 되어본 사람으로서 얻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압제에 맞서고 싶어졌다. 모든 걸 혼자서만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압제에 대한 증오심을 유난히 길게 끌고 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실패만이 유일한 미덕처럼 보였다. 조금이라도 자기 발전을 생각한다면, 심지어 한 해 몇백 파운드를 버는 정도의 성공이라도 바란다면 비열한 짓 같았다.
(…)
그러다 영국에 와보니 압제와 착취를 찾아보기 위해 버마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영국에, 바로 자기 발밑에, 다르긴 해도 어느 동양인 못지않게 비참한 생활을 하는 밑바닥 노동계급이 있었던 것이다.

🔖 유감스럽게도 계급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 진전도 있을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랄 ‘필요’는 있되,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 바람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직시해야 할 사실은, 계급 차별을 철폐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는 점이다. 여기 중산층의 전형적인 일원인 내가 있다. 내가 계급 차별을 없애기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거의 모든 것은 계급 차별의 산물이다. 나의 모든 관념은(선악에 대한, 유쾌와 불쾌에 대한, 경박과 경건에 대한, 미추에 대한) 어쩔 수 없이 ‘중산층’의 관념이다. 책과 옷과 음식에 대한 나의 취향, 명예에 대한 나의 감각, 나의 염치, 나의 식사 예절, 나의 어투, 나의 억양, 심지어 나의 독특한 몸동작도 전부 특정한 훈육의 산물이며, 사회 위계의 윗부분에 있는 특정한 지위의 산물이다. 그런 사실을 이해할 때, 나는 프롤레타리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그와 정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계급적 특권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은밀한 속물근성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취향과 편견도 억눌러야 한다. 나를 철저히 변화시켜야 하며, 결국엔 같은 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으로도, 더 어리석은 형태의 속물근성을 억제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삶에 대한 상류층적, 중산층적 태도를 완전히 버리기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아마도 그러기 위해 나에게 요구되는 것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 지금 중산층 가운데 상당수가 서서히 프롤레타리아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무튼 첫 세대 동안은 프롤레타리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 이 모든 사람들의 적은 노동계급의 그것과 같다. 모두가 같은 체제에 약탈당하고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위기가 닥치면 거의 모두가 압제자의 편을 들 것이며, 한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의 적이 될 것이다. 중산층인 사람이 몰락하여 최악의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해도 노동계급에 대한 매몰찬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물론 이런 사람들이 쉽사리 파시스트 정당에 동조하게 된다.
(…)
사회주의자들은 앞으로 큰 과제를 남겨두고 있 다. 그들은 착취자와 피착취자를 가르는 선이 정확히 어디부터인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본질을 고수하는 게 중요한데, 여기서 핵심은 수입이 적고 불안정한 모든 사람은 한 배를 탄 이들이며 한편이 되어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
계급 차가 큰 사람들끼리 진정한 사회주의 정당을 결성하여 함께 싸운다면, 서로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 뒤라야 계급적 편견이라는 재앙이 서서히 사라질 것이며, 가라앉아가는 우리 중산층은 (학교장, 툭하면 굶어야 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대령의 연소득 75파운드인 과년한 딸, 케임브리지 출신 실업자, 탈 배가 없는 해군사관, 사무원, 공무원, 출장 판매원, 시골 읍내 에 사는 세 번 파산한 포목상은) 더 이상 발버둥 칠 것 없이 우리가 속한 노동계급 속으로 내려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우리가 두려워하던 것만큼 끔찍한 일이 아닐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잃을 것은 우리의 ‘h’ 발음밖에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