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아빠가 나보다 자유롭다는 이유로 그에게 화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노력 중이야. 너무 전형적이지. 나는 전형적이야. 전형적이라고 느끼는 게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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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구한 날 남편을 원망하는 임신부이자 엄마는 절대 되고 싶지 않아. 너희 아빠에게 화내고 싶지 않아. 우리는 운동선수이자 등반가로서 서로를 지지하기로 했지만 내 경력이 이렇게 긴 휴식기에 들어갔는데도 이전처럼 평등한 상태가 유지될까? 나는 남는 시간에 기저귀 가는 탁자와 유모차와 수유베개를 검색하고 있고 남편은 이 시간에 엘 찰텐에서 빵이나 먹으며 날씨가 바뀌어 또 다른 등반을 할 수 있길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우리가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 그래서 오늘 너희에게 내 바람, 내 두려움,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해두려고 해. 혹시라도 나중에 너희가 엄마를 더 잘 알고 싶어질 때 이 편지를 이용하렴. 어느 누구도 마흔이 됐을 때 인생이 뭔지 잘 모른다는 증거로 삼아도 좋겠다. 혹은 엄마가 부모로서의 여정을 시작할 때 카시트를 어떻게 끼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젖을 먹인 다음에는 꼭 턱밑을 닦아줘야 우유가 목에 껴 상한 치즈가 되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는 것도.
내 바람: 너희가 강인하면서 연약하길 바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지칠 정도로 반복된 일상에도 만족하는 부모가 될 수 있길 바라. 내가 이 세상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세상에 약간의 변화를 만들면서도 너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점점 커지는 욕구에도 진실할 수 있길 바라. 우리 다리와 팔과 폐의 힘으로 같이 이 세상을 탐험할 수 있길 바라. 너희가 같은 시간에 낮잠을 자길 바라. 엄마가 분명 저지르게 될 실수를 너희가 용서해주길 바라. 내가 나를 용서하길 바라.
🔖 나는 모험이 없는 진공상태에서는 더는 존재할 수가 없어. 나는 모험의 땅을 봐야만 하겠어. 직접 보고 느끼고 숨이 멎을 정도로 감동하고 두려워하기도 해야겠고. 위험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야. 왜냐하면 현실이란 우리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거든. 우리 모험이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려주지. 나는 지금 내 어깨에 지고 있는 이 책임의 무게를 이해하려고 해. 처음으로 에티오피아의 대산맥을 등반했을 때 이 산 이상의 무엇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어. 내 모험을 하나하나 보면서 이 모험이 과연 무엇인지, 이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했어.
🔖 지금 당장은 너희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지만 예전에는 기쁘게 참여한 이런 기회를 계속 놓치면 내가 흐리멍덩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나는 모든 걸 다 하고 싶어. 내가 원하는 건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게 옳다고 느끼는 거야.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순간에도 좋고 장기적으로도 좋을 결정을 내리고 싶어.
가끔은 너희와 같은 집에서 일하고 너희 소리를 듣고 너희와 있고 싶다. 가끔은 우리가 공원에 있을 때도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일을 해야 하니까. 아니, 헛소리고 일을 하고 싶어서. 나는 그렇게 세상과 연결돼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아. 두 장소 모두에 완전히 다 머물고 싶지만 언제나 반씩 나뉘어 있지.
🔖 내가 충분히 열심히 노력하고 밀고 나가면 다 해낼 수 있다고. 이제까지는 대체로 충분히 열심히 밀어붙이면 내 삶 안의 여러 조각을 하나로 모을 수가 있었거든. 지금 당장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가가 따르지. 그리고 그 대가란 내 분노야. 몸이 덜덜 떨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의 분노.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분노를 품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너희에게 그런 유산을 남겨주고 싶지 않아.
🔖 나는 이 방정식에서 남자가 되고 싶어. 5일 동안 밖에 나갔다가 집에 와 26시간 만에 또다시 17일 동안 출장을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 사이 집에 있는 파트너가 다섯 가지 돌봄 선택지를 알아보고 밤에 아이들을 재우려고 하면 아이들은 “난 슬퍼. 엄마, 슬퍼. 왜 나 사랑 안 해줘”라고 울부짖겠지.
망할. 나는 그 집에 있는 배우자가 되고 싶지 않아. 내게도 그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그 아내인 게 싫고 우리 인간 집단이 이렇게 살게 된 것도, 이게 내가 맡게 된 역할인 것도 싫어.
🔖 그가 원하는 건 아주 멋진 날, 자신을 잃을 정도로 등반에 빠질 수 있는 날이라는 걸 알아. 내가 원하는 건 등반을 하면서도 너희가 필요한 방식으로 엄마가 되는 거야. 너희 아빠는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쏟아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아. 그는 그냥 아빠가 되지. 그는 일주일이나 한 달을 불규칙하게 보낼 수 있어. 어떤 날은 집에 일찍 오다가 열네 시간 내내 밖에 나가 있을 수 있어. 나는 매일이 리셋돼. 너희 둘에게도 마찬가지지. 우리가 서로에게 이 현실을 가르쳤던가? 우리가 다르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