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우리 네 사람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였다. 마치 우리가 공통점이 아주 많은 것처럼, 그리고 한 가족인 것처럼. 나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임을 깨달았다. 본질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아이디어도 내놓지 않으며, 필요한 물건이나 식량을 만들어 내지도 않고, 땅을 경작하지도 않고,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자손을 번성시킨 것도 아니다. 검정 코트를 아들로 둔 괴짜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금껏 우리는 세상에 유용한 뭔가를 제공한 적이 없다. 그 어떤 발명품도 고안해 내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권력도 없고 보잘것없는 재산 말고는 다른 자원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고 있지만 남들은 그것을 조금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라진대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 아무도 그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 나는 또한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결국 나도 저들과 비슷한 부류 아닌가. 내가 인생에서 거둬들인 수확물은 건축 자재가 아니다. 나의 시대에도, 또 다른 시대에도 그것은 별 쓸모가 없다.

하지만 왜 우리는 꼭 유용한 존재여야만 하는가, 대체 누군가에게, 또 무엇에 유용해야 하는가?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는가? 엉겅퀴에게는 생명권이 없는가? 창고의 곡식을 훔쳐 먹는 쥐는 또 어떤가? 꿀벌과 말벌, 잡초와 장미는?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못한지 과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까? 구멍이 많고 휘어진 거목은 사람에게 베이지 않고 수세기 동안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그 나무로는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보기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유용한 것으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이익은 누구나 알지만, 쓸모없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중세 시대의 수도사이자 점성가가 자신의 천궁도를 보다가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었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멩이에 맞아서 죽을 운명이었대. 그때부터 그는 수도사용 후드 아래에 항상 철모를 쓰고 다녔어. 어느 해 성금요일에 그는 모처럼 후드와 함께 철모를 벗었어. 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성당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지. 바로 그때 그의 맨 머리에 작은 조약돌이 떨어져서 가벼운 생채기를 냈어. 하지만 수도사는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확신했어. 그래서 주변을 말끔히 정리했고, 한 달 후 세상을 떠났어. 모든 건 이렇게 작동하는 거야, 디지오.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아직 내게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는 걸.

욕심, 자연을 존중할 줄 모르는 태도, 이기주의, 상상력의 결핍, 끝없는 분쟁, 책임 의식의 부재가 세상을 분열시켰고, 함부로 남용했고, 파괴했다. (······) 세상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심지어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다.

다정함이란 다른 존재, 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 그리고 물리적인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속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다정함은 우리를 서로 연결하는 유대의 끈을 인식하고, 상대와의 유사성 및 동질성을 깨닫게 한다. 이 세상이 살아 움직이면서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더불어 협력하고,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 문학이란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한 마음에 기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본적인 심리학적 메커니즘이다. - 토카르추크, 노벨상 수상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