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규제하고자 하는 편견을 드러내는 것의 핵심은, 혐오표현이 단지 자율적인 자기표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혐오표현은 단순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발산하는 행위가 아니다. 편견을 드러내는 행위는 취약한 소수자 구성원들이 의존하는 확신의 사회적 의미를 특별히 목표로 삼는다. 핵심은 취약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사회가 제공하는 암시적 확신, 다시 말해 그들은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에서 정상적인 지위를 가진 구성원으로 인정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이러한 확신을 약화시키고, 이의를 제기하고, 혐오, 배제, 경멸을 가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손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이 시작된다. 암시적으로 확신을 가졌던 것은, 지금 분명히 도전을 받았다. 그래서 소수자 구성원들은 자기 일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가족들과 공공장소에서 산책을 하려고 할 때, 새로운 일련의 총체적인 예상을 해야 한다.
…정확히 문제의 혐오표현이 목표로 하는 지점이다. 취약한 소수자 집단 구성원들에 관한 암시적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당신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확신하지 마라. 당신들의 기회와 평등한 존엄을 위해 의존하고 있는 바로 그 사회는 이러한 것들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그 가치들에 냉담하다는 것을 드러낼 것이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러한 반대 생각에 의존할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고 두려워하라. 지금 너희들을 보호하고 있는 사회에서 너희들을 비하하고 배제할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만약 이것이 혐오표현의 메시지라면, 공적 논의의 장에 끌어들이는 것이 유일하게 적절한 대응인지는 결코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메시지를 숨게 만드는 점이 나쁜지 역시 전혀 명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