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엔 연말 회고 같은 건 안 쓰려고 했었다. 별로 쓸 내용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었고 다른 할 일은 하기가 싫기 때문에 뭐라도 써보겠다.

2025년은

25년이 시작할 땐 이런 글을 썼었는데, 역시 별 계획이나 목표를 안 세우기로 한 건 잘한 일이었다. 올해 초는 이직 직후였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에너지가 꽤 들어갔고 혼란한 정치적 상황과 그 와중에 여행 일정도 많았고 여러 모로 정신이 없었다. 안정된 다음에도 올해는 계속 단기적인 시야로 결정하고 행동했던 것 같은데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다. 매해 만다라트급으로 목표 세우던 게 전생 같다.

새 회사 1년 실사용 후기
첫 이직을 하고 딱 1년 정도가 지났다. 이상 탐지에서 추천으로 도메인을 바꿨고 초반에 따라잡을 게 많아서 벅찼지만 돌아보니 그 과정이 재미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 당시에는 밤에 키보드 두드리면서 비명 좀 질렀을지도? 당연히 새 회사의 모든 점이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직하면서 새로운 도메인과 하나의 프로덕트에 대한 집중이라는 경험을 얻고 싶었는데 그건 잘 달성했다고 생각한다(항상 내가 얻고 싶은 것 몇 개를 고르는 게 중요하다). 예상치 못하게 얻은 무언가도 있다.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정말 0에서부터 추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1on1할 때 리드분이 그래서 더 재밌지 않아요? 라고 했고 맞는 말이었다. 데이터 파이프라인, 피쳐 스토어, 모델부터 API 개발까지 한 사이클 알차게 해볼 수 있었다. 특히 나는 도메인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 최적화된 시스템에 대한 고도화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면 기여도에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다행히 일정이나 기술에 있어 자율성이 주어지는 환경이었고, 작은 규모의 팀으로 컴팩트하게 일하는 것과 매니저가 아닌 IC로서 참여하는 것도 이전 회사 대비 만족스러운 점이다. 내년에도 해야 할 일은 많아서 기대가 된다.

전반적으로는
요즘은 이보다 삶이 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스트레스가 없어서 지난 몇 년간 더럽게 안 떨어지던 식도염이 언젠가부터 싹 사라졌을 정도다. 가장 만족감을 주는 게 뭔지 생각해봤는데 거의 밖을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 생활과 기계처럼 판에 박힌 일상인 것 같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게 너무너무 좋음.. (요약하면, 일어나서 일하고 점심 먹고 개산책시키고 일하고 요가하고 저녁 먹고 일하고 끝나면 술먹고 놀다 잔다.)
예전에는 뭔가 새로운 자극이(기술적인 거 말고 삶에)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그냥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나는 현 상태 그대로 행복하다. 그래도 이 무서울 정도로 평온하고 안전한 일상이 이상한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에, 26년에는 엄청난 도전을 하나 하려고 한다. 그게 뭔지는 1년 뒤 회고에 아마도.

2025년의 ㅇㅇㅇ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인 사람이지만 점점 뭐 어렸을 때처럼 하나의 작품이 내 사고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거나 며칠을 벅차서 정신 못차리게 한다거나 그런 일은 잘 없다(뭐 진짜 솔직히 말하면 그 비슷한 일조차 없다). 그 시절은 이십대 중반에 이미 끝났다. 그래서 매 해 올해의 무언가를 뽑는 게 조금씩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선 더 쉬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돌아보는 차원에서 뽑아보았다.

영화

  • 씨너스
  • 내 말 좀 들어줘
  •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 총을 든 스님
  • 그 외 96편은 2025 🎬

게임

  • 델타룬 챕터3-4
  • 디스코 엘리시움
  • 클레르 옵스퀴르: 33원정대
  • 그 외에 탑3만큼은 아닌데 스플릿 픽션, 산나비, 숲속의 작은 마녀, 포켓몬 레전드 ZA도 재밌게 했다. 사실 정말 많은 시간을 쓴 쪽은 늘 그렇듯 옛날에 하던 게임들 다시하기였지만(너 그거 아직도 해? 의 그것) 이 케이스를 올해의 게임이라고 할 순 없으니까.